골방잡담

히로시마 원폭, 그리고 잊힌 한국인 피해자들 본문

뒷방에서 CNN BBC/인권 양성평등 세태

히로시마 원폭, 그리고 잊힌 한국인 피해자들

sisu_ 2025. 8. 10. 19:56
BBC/Hyojung Kim
A memorial hall in Hapcheon holds 1,160 wooden tablets - each one bearing the name of a Korean killed by the nuclear bomb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지워진 역사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은 학도병, 징용, 위안부 등 다양한 형태로 착취와 폭력에 노출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이에 대한 합당한 사죄나 배상은커녕, 이 역사를 지우려 하며 문제를 키워왔다.

 

2025년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이지만, 일본 항복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원자폭탄 투하로 피해를 입은 한국인 생존자와 그 후손들은 여전히 책임지는 이 없는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일부 일본 시민사회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 규모는 너무 작아 반향이 미미하다.


80년 전 그날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국은 인류 최초로 실전에 사용된 원자폭탄 ‘리틀보이’를 히로시마 상공에 투하했다.


그 자리에서 약 7만 명이 즉사했고, 이후 수십만 명이 방사능 피폭·화상·탈수로 목숨을 잃었다.

 

이 중 약 20%가 조선인이었으며, 당시 히로시마에는 약 14만 명의 조선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한국인들의 희생과 차별

많은 한국인들은 강제노동으로 군수공장, 군수품 포장, 위험한 청소 작업에 투입됐다.


원폭 투하 이후에도 시신 수습과 방사능에 오염된 지역 정리 등 극도로 위험한 업무를 맡았다.


의료 지원은 거의 없었고, 그 결과 한국인 치사율은 57.1%로 전체 평균(33.7%)을 훨씬 웃돌았다.


귀향 후에도 이어진 낙인

전후 2만 3천여 명이 귀국했지만, 고향에서도 ‘저주받았다’는 낙인과 차별을 피할 수 없었다.


심각한 화상과 흉터로 인해 결혼이나 사회생활에서 배제되었고, 피부질환·심장병·암 등 원인 불명의 질병에 시달렸다.


2세·3세로 이어진 고통

피해는 세대를 넘어 이어졌다.


2세 피해자 한정순 씨는 고관절 무혈성 괴사로 걷기 어렵고, 첫째 아들은 뇌성마비로 태어났다.


여러 연구에서 2세 피해자의 질병 취약성이 확인됐음에도, 정부는 여전히 피해 인정을 위해 ‘증거’를 요구하고 있다.


늦은 조사와 일본의 태도

한국 정부는 2019년에야 첫 실태조사를 실시했고, 현재 2029년까지 유전자 조사와 추가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일본은 최근 히로시마 시 관계자가 처음으로 합천을 방문해 추모했지만, 식민지배와 한국인 원폭 피해에 대한 공식 사과는 여전히 없었다.


기억의 의미

생존자 심진태 씨는 이렇게 말한다.

“보상보다 중요한 건 기억입니다. 우리 몸이 겪은 일을 잊으면, 그 일은 다시 일어납니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전할 사람이 없어질 날이 올 겁니다.”

 

히로시마 한국인 피해자 현황 

  구분                                                 추정 인원                          비율/특징
히로시마 거주 한국인 약 140,000명 전체 피해자의 약 20%
폭탄에 직접 피폭 약 70,000명 -
연말까지 사망 약 40,000명 치사율 57.1% (전체 평균 33.7%)
전후 귀국자 약 23,000명 귀국 후 차별·낙인 경험
2세·3세 피해 자료 없음 질병 취약성·장애율 일반 인구보다 높음
 
 

The BBC visits the Korean survivors of the Hiroshima bomb

When the atom bomb was dropped 80 years ago, 140,000 Koreans were in Japan's Hiroshima city, many as forced labour.

www.bbc.com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