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용현, 요한, 씨돌 - SBS 스페셜

'SBS 스페셜 -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요한, 씨 돌, 용현'이 한국방송대상 대상을 수상 

 

용현이 11살에 부모를 잃고 들어간 대구의 'SOS 어린이 마을'은 미혼 여성이 어머니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는 대안 양육시설이다. 마르타(최해연 여사)는 그곳의 '1호 어머니'였고, 용현은 '1호 아들'이었는 데, 어머니의 깊은 사랑의 힘이 결국 그의 가치관이나 성품을 지니게 해 주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자기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을 보면서 몸으로 다 배운 것 같아요. 어려운 일이 있으면 꼭 자신도 남들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몸에 배었을 것이고요..."

 

그는 1980년대 홍제동 성당에서 김승훈 신부로부터 '요한'으로 세례를 받고 민주화 운동에 몸을 바친다.

 

1989년 2월, 한 시위에서 백골단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하자 김승훈 신부는 요한을 정선의 신현봉 신부에게 보낸다. 신 신부가 다른 성당으로 옮기자, 요한은 북평면의 봉화치 마을로 들어가 '씨 돌'로 이름을 바꾸고 무려 30여 년간을 자연의 친구로 산다. 농약이나 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농법은 물론이고 산 짐승들에게 겨울철이면 직접 키운 곡식이나 과일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산불 감시 요원 역할까지 한다. 

 

용현이 민주화 운동에 적극 나서게 된 계기는 1987년 1월의 박종철 학생의 죽음이다. '전국 민족민주 유가족협의회(전가협)'을 찾아가서 유가족들을 도우면서 집회 현장에서는 앞장서 몸을 던져 그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민주화 운동의 성지인 명동성당에서 천주교 공명선거감시단에 소속해 있던 요한은 군대에서 정연관 상병이 구타에 의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제보를 받는다. 그는 정 상병의 어머니인 임분이 할머니를 비롯한 유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되도록 발 벗고 나선다.

​

요한의 끈질긴 노력에 힘입어 국회에서 다뤄지게 됐지만 진상 규명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2004년 7월, 17년 만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하여 구타에 의한 사망으로 확인되었다. 1987년 대선, 군 부재자 투표에서 노태우 여당 후보를 뽑지 않았다고 상관들이 정상병을 심한 폭행으로 숨지게 한 것이다.

 

봉화치 마을에 살던 자연인 씨돌이 다시 나타난 건 1995년 6월 29일, 서울의 삼풍백화점이 붕괴(502명 사망, 6명 실종, 937명 부상) 되었을 때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헌신적으로 구조를 하다가, 마무리될 무렵 사라진다.

 

길상사와 법정스님 이야기 : 무소유를 실천한 사람들

 

그는 사람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나타났고, 자신의 공적이 빛나는 자리는 피했다. 

 

봉화치 마을에 살면서 씨돌은 이천 페이지가 넘는 글을 썼는 데, 산중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후, 시인이며 출판사 대표인 장종권 씨가 책으로 발간했다. : 김씨돌 산중일기』 제1권 《오! 도라지 꽃》, 제2권 《청숫잔 맑은 물에》, 김씨돌 산중 시첩 『그대 풀잎 비비는 소리 들었는가』  

​

해발 800미터에 위치한 봉화치 마을에서 씨돌은 배옥희 할머니와 이웃으로 지내며 살았는 데, 전체가 세 가구인 마을이다. 씨돌은 그곳에서 직접 재배한 유기농 농산물을 '참여연대'에 지속적으로 기부하기도 했다. 

 

SBS 제작진이 임분이 할머니(고. 정연관 상병의 어머니)와 그의 형을 정선의 한 요양병원으로 안내한다.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용현, 무려 15년 만의 상봉이다. 아무 조건도 없이 몸을 던져 돕다가 진상 규명이 규명되자 홀연히 떠났던 용현...헌신적인 도움에 보답도 하지 못해 용현이 떠났나 생각하고 섭섭한 마음을 가졌던 임 할머니 앞에 모습을 드러낸 용현, 정 상병 죽은 후 눈물을 잃었다는 임 할머니,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는 그의 형, 통곡하는 용현.

 

이 시대를 살았던 의인의 뒷모습에 마음이 아파온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성자일 지도 모른다."라고 자위를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