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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만 명이 희생되었는 데도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는 '한국전쟁' 본문

뒷방에서 CNN BBC/국제 비즈니스 전쟁

500여만 명이 희생되었는 데도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는 '한국전쟁'

sisu_ 2020. 12. 10. 20:27

An American soldier walks around the rubble of Hamhung, North Korea.

(한 미군 병사가 북한 함흥의 잔해 주변을 걷고 있다.)

 

흑백 사진들을 보면서 그날의 처절했던 모습을 떠올린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서구 국가들이 자신들이 참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 혹은 알려지지 않은 전쟁(The Unknown War)으로 부르는 전쟁이 있다. 2차 세계 대전과 베트남 전쟁 사이에 벌어져 젊은 세대들이 잘 알지 못한다는 '한국전쟁'이다.

 

한국에 유엔 16개국(미국, 호주, 벨기에, 캐나다,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프랑스, 영국, 그리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뉴질랜드, 필리핀, 남아프리카 공화국, 태국, 터키)이 전투부대를 파견했고, 5개국(인도, 이탈리아,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이 의료 원조를 했다. 

 

또한, 북한을 도왔던 2개국(중국*당시 중공, 소련)과 의료지원을 한 6개국(체코, 동독,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베트남*당시 월맹)을 더하면, 남북한 당사자를 제외하더라도, 29개국이 한반도에서 전투 및 의료 요원으로 전쟁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미군이 36,574명이나 사망했는 데도 한국 전쟁은 한반도에서 일어난 국지전으로, 'MASH'(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야전외과병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코미디 드라마) 정도로 기억되었는 데, 최근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승리한 전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미소냉전 대립으로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500여만 명이 사망했다. 2차대전이 끝난지 채 5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 중, 영, 프, 소 등 강대국들은 세계 대전으로의 확전을 우려했고, 미국 트루만 대통령은 맥아더의 요구대로 만주 지역에 원자탄을 떨어뜨리는 대신, 1951년 그를 해임했다.

 

이제 전쟁이 발발한지 70년이 되었고, 베이비 부머 세대(1955~1963년 출생)들이 은퇴를 시작한지도 몇년이 흘렀다. 되돌아보기 싫은 동족상잔의 비극이지만, "잊혀진 전쟁"이 되지 않토록 세계사적인 측면에서 조명이 되어 역사적인 교훈으로 후세에게 남겨졌으면 한다.  

 

(요약)

한국전쟁의 사진들. 1953년에 적대행위가 중단되었지만, 전쟁은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국전쟁의 원인


일본의 식민 지배하에 있던 한국은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일본의 패망 후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38선 이북 지역은 소련, 남쪽 지역은 미국이 점령했다. 1948년 한반도에는 이념적으로 반대되는 두 나라가 설립되는 데, 대한민국(남한)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이다. 그리고, 북한은 공산주의 통일을 원했다.


기타 사실

유엔이 역할을 한 첫 번째 전쟁. 군사원조를 보내달라고 한국이 요청하자, 유엔 16개국이 군대를 보냈고 41개국이 장비나 원조를 보냈다. 중국은 북한 편에서 싸웠고, 소련은 그들에게 군사 장비를 보냈다.

미국은 한국을 돕기 위해 파견된 병력의 약 90%를 보냈다.
제트기간의 전투와의 첫 번째 전쟁.
미국은 이 전쟁에 약 670억 달러를 썼다.

휴전 회담은 2년 17일 동안 계속되었다.
2000년 6월까지 사상자 수는 54,246명으로 보고되었는데, 당시 미 국방부는 사무 상의 오류로 한국전쟁 외 사망자가 포함되었다고 인정했다.

2020년 4월 현재 한국전쟁으로 아직 파악되지 않은 미군 병사는 7,600명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한국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미군 통계
출처: 국방부
미국 사망자:
교전중: 33,739
비전투: 2,835
총 사망자: 36,574명
미군 부상자 - 103,284명

나라별 인명피해(살해·실종)
출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대한민국 - (군인 217,000명, 민간인 100만 명)
북한 - (군인 406,000명, 민간인 60만 명)
중국 - (군인 60만 명)

타임라인

1947년 11월 - 유엔 총회는 임시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한국 전역에서 열리는 선거를 승인한다. 소련은 이에 반대한다.


1948년 5월 10일 -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는 국회를 선출한다. 북측은 참가를 거부한다.


1948년 9월 9일 -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수립한다.


1950년 6월 25일 - 135,000 명의 북한 인민군 병사들이 38선을 넘어 대한민국을 침공한다.


1950년 6월 25일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행동을 규탄하고 적대행위 중단과 38선 이북으로 북한군 철수를 촉구한다.


1950년 6월 26일 - 미국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게 미국 부양 가족을 한국에서 대피시키고 한국군을 지원하도록 지시한다.


1950년 6월 30일 - 트루먼은 지상군을 전투에 투입할 것을 명령한다.


1950년 7월 - 전쟁 첫 달에 미군들은 노근리라는 마을 근처에서 다리 밑에서 상당수의 한국 민간인들을 살해한다. 군인들이 민간인을 살해하도록 지시받았는지, 스스로 행동했는지는 불분명하다.


1950년 7월 5일 -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처음으로 미군이 서울에서 남쪽으로 30마일 떨어진 오산 지역에서 전투에 돌입한다. 한국전쟁의 첫 미국인 사상자가 이곳에서 사망한다. 웨스트버지니아의 케네스 섀드릭 일병이다.


1951년 6월 23일 - 소련의 유엔 대표인 제이콥 말릭은 휴전을 제안한다.


1951년 7월 10일 - 개성에서 휴전회담이 시작된다.


1951년 10월 25일 - 휴전회담은 판문점으로 옮겨진다.


1951년 11월 27일 - 양측은 30일 안에 휴전이 성사될 경우 기존의 전선이 남북간의 최종 분단선이 될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1952년 4월 - 자발적 (포로)송환을 놓고 휴전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1952년 10월 8일 - 휴전 회담은 연기되었다.


1953년 4월 26일 - 휴전회담이 재개되고, 공산주의자들은 자발적인 송환에 동의한다.


1953년 7월 27일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국인민인민지원군, 유엔이 정전협정을 체결한다. 대한민국은 서명을 거부한다. 그러나 12시간 이내에 교전이 중단된다. 휴전 조건은 비무장지대인 DMZ 조성 등이다. 양측은 중앙에서 2 킬로 떨어져 있다. DMZ는 항상 양쪽이 순찰한다.


2007년 현재 - 국방 전쟁포로/행방불명 회계 기구는 최근 군인들의 유골에 대한 보도 자료를 온라인에 게시한다.


2018년 4월 27일 - 하루 동안의 정상회담 동안,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적대행위가 중단된 지 65년 만에,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유엔, 미국, 중국 같은 전쟁 당사국들이 공식적인 평화 조약에 서명해야 할 것이다.

 

 

Korean War Fast Facts

Read CNN's Fast Facts about the Korean War. Although hostilities ceased in 1953, there has been no formal end to the war.

www.cn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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