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잡담
반 고흐의 수호천사, 조제프 룰랭 – 외로움 속 피어난 우정의 초상들 본문

BBC 드라마 <닥터 후>에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다.
시간여행자 닥터가 19세기의 빈센트 반 고흐를 찾아가, 현대의 파리 오르세 미술관으로 데려온다.
그곳에서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감상하며 감탄하고 있다.
반 고흐는 처음엔 믿지 못한다.
자신의 그림 앞에서 수많은 관람객들이 눈을 떼지 못하고 감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어요.”
그는 결국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 장면을 보던 나 역시 울컥했다.
반 고흐의 그림을 보고 높이 평가하거나 감동을 받기란 쉽지 않다.
마치 피카소의 작품을 보고 '왜 저게 그렇게 위대한 걸까'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 역시 그림 감상을 좋아하지만, 어쩌면 여전히 문외한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고흐는 늘 마음 한 켠을 울리는 예술가다.
짧은 예술가의 삶을 살며 37세에 생을 마감한 그는, 불운한 천재 화가이자 인간적인 예술가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할 정도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
반 고흐의 수호천사, 조제프 룰랭
1888년 12월 23일, 반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고 성노동자에게 건넸다.
정신적 고통이 극에 달한 그날, 그의 곁을 지킨 사람은 다름 아닌 프랑스 아를(Arles)의 우체부 조제프 룰랭(Joseph Roulin)이었다.
룰랭은 반 고흐가 정신병원에 입원하도록 도왔고, 병문안도 꾸준히 다녔다.
그의 동생 테오에게 상태를 전하며, 병원비와 월세도 대신 내주었다.
퇴원하던 날에는 하루 종일 그의 곁을 지켰다.
반 고흐는 그를 "지혜롭고 따뜻한 영혼"이라 표현하며 깊은 신뢰를 보였다.
그의 편지에는 “옛 병사가 젊은 병사에게 가지는 고요한 중력과 온정”이라는 말이 남아 있다.
한 가족을 그린 화가
이 따뜻한 우정은 예술로도 이어졌다.
오는 3월 30일, 미국 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에서 개막하는 전시 《Van Gogh: The Roulin Family Portraits》는 바로 룰랭 가족 전원을 그린 반 고흐의 초상화를 다룬 전시다.
이후에는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Van Gogh Museum)으로도 이어진다.
반 고흐는 룰랭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 오귀스틴과 세 자녀 아르망, 카미유, 마르셀을 모델로 삼아 총 26점의 초상화를 남겼다.
이는 한 가족을 이렇게 집중적으로 그린 사례로는 미술사에서도 드물다.
초상화에 담긴 위로와 희망
초상 속 조제프 룰랭은 파란 우체부 제복에 ‘POSTES’라고 적힌 모자를 쓰고 있다.
그의 거친 콧날과 붉은 얼굴, 풍성한 수염은 반 고흐에게 매혹적인 주제였고,
그의 존재 자체가 외로움과 불안에 시달리던 화가에게는 하나의 ‘안식처’였다.
특히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La Berceuse (자장가)》는
아기 마르셀을 안고 있는 오귀스틴을 그린 그림으로,
반 고흐는 아이의 요람이 실제로 흔들리는 듯한 장치를 화폭 너머에까지 구상했다.
이 초상화 시리즈에는 희망과 평온이 담겨 있다.
그림을 통해 피어난 우정의 힘
이 따뜻한 관계는 단순한 모델과 화가의 관계가 아니었다.
반 고흐는 룰랭 가족과의 교류 속에서 자신만의 초상화 스타일을 실험할 수 있었고,
이러한 여유가 그로 하여금 인간을 그리는 방식을 재정립하게 만들었다.
그는 “내 눈앞에 있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것을 표현한다”고 말했다.
그의 붓놀림은 감정과 연결되어 있었고, 룰랭을 그릴 때 그는 “내가 느끼는 대로 그리겠다”고 동생 테오에게 밝혔다.
마지막까지 함께한 인연
반 고흐는 그 후로 19개월을 더 살았고,
마지막 70일 동안 무려 70점의 그림을 그려냈다.
그의 그림은 지금까지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고,
그 중심에는 그림 속 인물들이 있다 — 가장 평범했지만, 가장 따뜻했던 룰랭 가족.
이번 전시는 단순한 초상화 전시가 아니다.
이 전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 그리고 예술이 지닌 치유의 힘을 보여준다.
슬픔과 희망이 공존했던 반 고흐의 삶 속에서,
그림은 우정이 되고, 위로가 되었고, 결국 우리에게는 사랑의 언어로 남았다.
'A very deep bond of friendship': The surprising story of Van Gogh's guardian angel
At the toughest time of his life, the painter was supported by an unlikely soulmate, Joseph Roulin, a postman in Arles. It was a friendship that would benefit art history.
www.b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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