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잡담
뜻밖에 선물, 내 넘버 3를 소개합니다: 킨들 이야기 본문
난 원래 선물하거나 받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다. 그 선물이 내가 꼭 필요하거나 갖고 싶었던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또한, 내 선물을 받는 상대방이 간절히 원했던 것이라서 그 사람을 기쁘게 한다면 당연히 나도 기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부도 하고 봉사도 하는 것이 아닐까...
4년 전 어느 날 가까운 사람에게서 선물을 받았다. 그것은 킨들이었는 데, 사기 전에 물어보았다면 말렸을 것이다. 첫째, 외국 가전제품 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해외사업 쪽에 일할 때 물건을 팔기 위해, 일본, 미국, 유럽 바이어들에게 당한 모욕감, 강요당한 불평등 거래조건, 언어 우월주의(영어나 일본어 등 그들의 언어에 익숙하지 않으면 무식한 것처럼 치부하려는 태도)가 떠오르곤 한다. 한마디로, 고객의 갑질인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벌어온 외화를 유사한 한국산도 있는 데 굳이 사야 하나 하는 순전히 내 개인 만의 아픈 추억(트라우마)에서 나온 습관(생각)이다.
남들(해외)이 만든 성능이 우수한 제품을 써봐야 자신도 발전하고, 또 응용하여 더 좋은 제품도 만들고 해서 인류가 함께 발전해 나가는 것이니까. 그래서, 내가 습관(?)을 바꾼다 해도 전자책(킨들) 유용성을 인식 못했었다는 게 둘째 이유다.
딸이 킨들을 내밀었을 때, 이것은 선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리적으로도 해외직구를 반품할 수는 없으니까...
얼마 전부터 이사 갈 때마다 정리한다고 버렸지만, 갑자기 읽을 만한 원서가 없나 하고 책을 찾기 시작했다.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 레미제라블 (Les Misérables), 테스(Tess of the D'Urbervilles) 등이 떠올랐다. 영화도 보고, 뮤지컬도 보고 하다 보면, 역시 원작을 읽고 싶어 진다. 근데 원작이란 것이 막상 읽다 보면 배경 설명이 많아 지루하기도 하다. 그래서 이러한 명작들은 여러 번 읽어야 하고,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준다.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읽을 때는 몰입해서 페이지 넘어가는 줄 모르고 만화책처럼 넘긴다. 근데 이게 우리말이 아니라서... 특히 레미제라블은 프랑스어 원작-영어 번역이기도 하고. 위대한 개츠비는 짧지만 대부분의 명작들은 두꺼운 데다 페이퍼백은 글씨도 작고 책을 펴도 읽기 편평하게 되지도 않고요. 정장판은 크고 무거워서 손목이 아프고요. 지하철이나 공항에서 읽고 있는 외국인들 보면 그 작은 글씨의 몽땅한 책을 잘도 읽는 것 같아 어이가 없더라고요. 아마도 자기들 모국 어니까 읽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듯 보이더군요.
어쨌든, 아마존에서 다운로드해서 읽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나의 절친이 되었다. 얘는 바로 신분이 상승되어 외출하기 전 챙기는 필수품 지갑, 휴대폰에 이어 No.3로 바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아침에 출근 버스를 기다리면서 읽고 있으면 10~20 분도 지루하지가 않았었는 데, 늦가을 어느 날 얘가 먹통이 되었다. 처음엔 망가진 줄 알고 몹시 실망했다. 왜냐하면 온오프 기능 외에는 고장 날 곳이 없으니까. 한국 가전제품 같으면 서비스 센터에 달려가면 만사가 해결되는 데. 얘의 수명이 몇 달밖에 안되나. 하고 말이다. 역시 가전제품은 국산을 써야 돼...
뒤늦게, 온도가 낮을 때는 화면이 잘 언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가방이 아닌 가슴에 품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래도 얼어붙기 일수였지만. 화면이 눈이 부시지 않아 장시간 봐도 눈이 피로하지 않은 데, 이것이 일반 액정 구동방식과 다른 방식(물질)을 사용하는 데, 그것이 추위에 약해 얼어붙는 것이 아닌 가 호의적으로 이해해 주려고 추측해 본다.
밤에 자기 전에 항상 충전기에 꽂아 놓고 자는 데 충전이 되어있지 않아 낮에 볼 수가 없는 경우가 발생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아예 연결해도 인식 등이 들어오지 않아 다시 사려고 까지 했다. 며칠 지난 후 다시 시도하다 우연히 깜박거려 다시 연결하니 충전이 되었다. 요즈음은 자기 전 킨들을 얘기 재우듯이 조심스럽게 연결잭에 연결하고 불이 들어오는지 확인하고 자는 게 하루 일과의 마지막 중요한 일이다.
* 관찰한 바로는 충전선 연결 시 주황색 등이 깜박거리면, 연결 상태가 불안하여 충전 안 되고, 아예 불이 안 들어오는 경우도 있음. 이 경우 충전이 전혀 되지 않고 방전되어 킨들이 들어오지 않음.
어쨌든 얘를 만난 이후, 나는 기다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류장, 버스/지하철, 카페, 식당, 공원 등 어디서나 얘를 꺼내 읽고 있으면 무아지경으로 빠지게 된다. 나는 멀미를 하지 않지만, 책을 꺼내 읽으면 멀리를 할 것 같아, 이동시간 무료하게 보내거나 눈을 감고 있었으나, 요즈음 얘를 꺼내 독서를 한다. 물론 읽다가 목적지를 지나친 적도 몇 번 있었지만.
운 나쁘게도 나에게 온 제품만 부실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쓸 수 있는 날까지 잘 달래서 쓰려고 한다. 내게 소중한 애니까.
* 특정 브랜드를 선전하는 것 같은 데, 요즈음 여러 가지 전자책 브랜드들이 나와 있어, 사용자의 목적과 용도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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